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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대초 신해혁명과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 등 국제정세가 변화 될 무렵, 우리나라는 일본의 무단통치 아래 있었다. 1910년 8월 29일 한ㆍ일 합병조약이 체결되면서 조선총독부가 설치되고, 본격적인 식민통치가 시작되자 나라를 되찾기 위한 독립운동이 전개되기 시작한 하였다.
일제의 수탈과 탄압이 점점 심해지자 국내에서의 항일운동이 어려워졌고, 국외에 독립기지를 건설하면서 무장투쟁의 전통을 이어나가야했다. 의병활동은 국내외에서 독립군으로 진화하게 되는데 국내에서 활동한 독립군은 비밀결사의 형태를 띄고 조직되었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대한광복회'이다.
대한광복회는 1915년 7월 15일(음) 대구 달성공원에서 국권회복과 공화제 실현을 목적으로 풍기에서 결성되어 활동해오던 ‘풍기광복단’(1913, 의병 관련 인물)과 ‘조선국권회복단’(1913, 계몽주의적 인물)을 바탕으로 박상진을 중심으로 결집된 세력들이 연계하여 결합된 조직이다.
| 1910년대 대표적 무장독립단체이자 전국적인 규모를 지닌 이 조직은 군대식으로 중앙의 총사령 박상진과 만주 부사령으로는 이석대(후에 김좌진), 지휘장 우재룡 권영만을 중심으로 재무부ㆍ선전부를 설치하였다. 1916년부터 충청도, 경기도, 강원도, 황해도 등으로 규모가 확대되면서 전국적인 조직망이 구축되었고, 각 도에는 지부장을 두어 조직활동을 더욱 활성화 시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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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화주의 국가 건설’을 위해 [비밀, 폭동, 암살, 명령] 이라는 4대 지침을 세우고 대구의 상덕태상회, 영주의 대동상회를 비롯하여 광주, 삼척, 인천등 국내거점과 연해주 및 만주의 안동에 설립된 곡물상을 연락거점으로 군자금을 모았고, 중국ㆍ러시아 등에서 무기를 구입하여 친일부호 처단, 일본 세금 탈취, 독립군 양성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특히, 박상진의 스승 허위와의 악연이 있는 친일부호 장승원 처단과 친일파 박용하 암살사건은 대한광복회의 대표적인 활동 중 하나로 꼽힌다.
그러던 중 1917년 겨울부터 1918년 봄까지 대한광복회는 최대 수난기를 맞게 된다.1918년 1월 회원인 이종국이 천안경찰서에 밀고함으로써 총사령 박상진을 비롯한 37명이 체포되고, 그로 인해 비밀조직망의 정체가 발각된다.
결국, 비밀결사단체 대한광복회 총사령 박상진이 체포되면서 대한광복회가 와해되는 계기를 맞게 되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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