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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10년 일제는 전국적인 의병의 저항을 무력으로 진압하고, 사법권과 경찰권을 빼앗은 다음 마침내 대한 제국의 국권마저 강탈하였다. 국권을 강탈한 일제는 강력한 헌병 경찰통치를 실시하여 언론, 집회, 출판, 결사의 자유를 박탈하고 독립운동 말살정책을 내세웠다.
한일합방으로 만주와 연해주를 오가던 박상진은 일제에 대항하여 의병을 능가하는 군사력과 군사조직을 위한 자금의 필요성을 느끼게 되고, 집으로 내려와 아버지 승지 박시규의 허락을 받고 가산을 삼정물산에 전답을 저당 잡혀 빌린 돈으로, 평양의 김덕기, 전주의 오혁태와 함께 곡물상회를 설립하게 되는데, 이것이 바로 ‘상덕태상회’다.
상덕태상회는 박상진의 상, 김덕기의 덕, 오혁태의 태가 합쳐진 이름으로 세사람의 이름에서 한자씩 추출해 합친 합성어다. 대구 약전골목 어귀, 교통이 편리한 곳에 점포와 창고, 사무실을 마련하여 겉으로는 무역업을 겸비한 곡물상으로 속으로는 독립운동가들의 연락거점과 자금조달처로서의 기능을 수행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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