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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광복회 총사령 고헌 박상진 의사(1884∼1921)가 1910년 정월 21일 종숙 박시준(울산예총 박종해 회장의 조부)에게 독립운동 독립운동 금전을 요청하는 내용의 한문 서찰(42×22cm·사진)이 처음으로 공개됐다.이 서찰은 박종해 예총 회장이 소장하고 있었으나 지난 2005년 10월 19일 박채은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 위원이 사료를 정리하면서 발견한 것으로 박 의사가 가까운 친척에게 수차례의 군자금을 받아 독립운동에 사용한 사실이 명확하게 드러나고 있다.

서찰은 종질인 박상진 의사가 종숙 박시준에게 할아버지 형제인 종조부 박정복 내외분의 안부를 묻고 자신이 보내는 사람에게 금전을 보내달라며 정중하게 요청하는 내용이다. 특히 박 의사는 금전을 받으러 보내는 사람 편으로 서찰을 보내면서 자신의 것임을 증명하는 직인(도장)을 찍고 군자금을 받았다는 영수증을 서찰에 함께 동봉하였다. 하지만 이 금전이 군자금을 의미하는것인지는 불분명하다. 초서로 쓴 이 서찰을 처음 발견한 박채은 위원은 충북대 이수봉 명예교수에게 번역을 부탁해 박 의사의 서찰이 처음 공개된 것이다.
 
 
박상진의사 군자금 요청 서찰 공개 박 의사, 할아버지 형제 다섯분

고헌 박상진 의사가 27세 되는 해(1910년) 종숙(울산북구 송정 교동댁)에게 요청한 서찰이 국내에서 처음 공개됨에 따라 울산의 정신적 스승으로 가치와 위상을 지닌 박 의사에 대한 역사적 연구에 일조할것으로 예상된다.박 의사는 울산 북구 송정동에서 밀양 출신 승지 박시규의 장남으로 출생했다. 그의 생애에 전환점이 된,의병장이자 계몽주의적 사상가 왕산 허위에게 수학하고 일제 치하에서 대한광복회(1915년)를 조직, 총사령관으로 활동했다. 1918년 2월 일본 경찰에 체포돼 1921년8월 대구에서 순국했다. 건국훈장 독립장(1961년)에 추서됐다. 다음은 박 의사의 서찰 원본과 역문이다.

 
<주해>

박상진 의사의 할아버지 형제는 모두 다섯 분으로 첫째(용복)와 둘째(헌복)분-1)을 지칭하고 종조부 셋째(정복)분이 모시고 같이 살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종질-2)은 박 의사 본인을 말하며 경주시 외동읍 녹동에 집-3)을 말한다. 양가-4)는 생가(박 의사의 아버지 시규)와 양가(시용)을 말하고 9월에 보내주신-5)의 下玄의 ‘下’는 내려주다, 보내주다의 뜻이며 ‘玄’은 고갑자(古甲子)의 간지(干支)에서 9월을 말한다. 성표(成.)-6)는 적어두다는 뜻이며 봉표(捧.)-7)는 ‘약속된 증표’를 말하고 ‘낭패’의 원래 한자는 ‘狼狽’인데 간찰에 왜 그렇게 표기했는지 알 수 없다.(번역을 한 이 교수는 박 의사가 한문을 잘 알고 있는데 왜 ‘良貝(량패)’로 표기했는지 이해할 수 없다고 밝혔다).고갑자의 간지에서 ‘염일(念日)’-9)은 ‘스무날’을 말하고 기(記)-10)는 ‘영수증’이란 표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