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韓光復會(대한광복회) 總司令(총사령) 朴尙鎭(박상진)義士(의사)는 1884년에 울산시 송정동에서 承旨(승지) 朴時奎(박시규)의 아들로 태어나 伯父(백부)인 校理(교리) 朴時龍(박시룡)에게 出系(출계)하였다.
그는 의병장이었던 旺山(왕산) 許蔿(허위)에게서 政治와 兵學을 배우고 義烈士(의열사)들의 傳記를 탐독하면서 어지러운 나라의 장래를 걱정하는 義氣(의기)를 기루어 나갔다.
분하게도 나라가 망하자 그는 의분을 참지 못하여 兄弟諸從(형제제종)을 모아놓고 오로지 生命을 나라를 위해 바칠 뿐이라고 이르고 中國으로 滿洲(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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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로 멀다않고 동분서주하면서 同志(동지)들을 규합하는가 하면 중국의 孫文(손문) 主席(주석) 및 혁명지도자들에게 日帝(일제)의 침략성을 주장하며 韓人士官(한인사관)양성의 필요성을 역설하여 黃浦軍官學校(황포군관학교)에 韓人特設部(한인특설부)의 설치를 약속받기도 하였다.
1915년 7월에는 마침내 大邱 달성공원에서 革命同志(혁명동지) 2백여명이 모여 大韓光復會(대한광복회)라는 비밀 結社(결사)를 조직 總司令에 추대되어 滿洲에 士官學校(사관학교)를 세워 독립전사를 양성하며 무기를 구입하여 이들을 무장시키고 日人의 고관과 韓人 반역자를 처단하여 민족의 正氣(정기)를 바로 세우며 무력의 완비시에는 日人의 섬멸전을 단행하여 국권의 광복을 기하도록 하되 이를 위하여 부호들의 義捐金(의연금)을 거두고 日人들이 불법으로 징수하는 稅金(세금)을 압수하여 軍資金(군자금)으로 쓸 것을 다짐하였다.
이로부터 義士는 日人들의 세금을 빼앗으며 민족반역자의 처단을 단행하고 조직을 확대하여 착착 조국 광복을 위하여 나아갔으나 다름 아닌 동족의 고발로 조직이 탈로나서 체포되어 1921년 8월 11일에 大邱 형무소에서 “難復生此世上(난복생차세상) 幸得爲男子身(행득위남자신) 無一事成功去(무일사성공거) 靑山嘲綠水嚬(청산조녹수빈)”이란 絶命詩(절명시)를 남기고 순국하였다. 그 때 義士의 나이 38歲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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